전쟁·혁명·식민지…'제3세계' 카지노 뽀찌들이 바라본 역사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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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야스 라당 '올드 소울-뉴 소울'현대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대부분 그들 몫이었다.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 중심의 '제1세계', 소련의 계보를 이은 '제2세계'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갈등 등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혀끝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프랑스령 과달루아의 식민지 시대 역사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고향 이란의 평화 염원하는 모노타이프
제3세계 시민들의 입장은 어떨까. 전쟁과 혁명, 포스트 식민주의 사회를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가 열렸다.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과들루아 출신인 토미야스 라당, 조국 이란에서 쫓겨나 미국에 정착한 카지노 뽀찌 니키 노주미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 당신을 위한 이야기가 있다"는 내레이션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마주친 사내 두 명이 주택가와 버스 정류장, 시청을 오가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들이 다투는 이유는 재산과 출신을 증명하는 한 장의 서류 때문으로 보인다. 막상 둘이 똑같이 '어떤 거대한 힘'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뒤에야 싸움을 멈추고 화해한다.
화려한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영상작업은 토미야스 라당(31)의 '라이벌'(2023). 지난 2021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촬영한 카지노 뽀찌의 첫 단편영화로, 카지노 뽀찌가 직접 무용수로 등장한다. 두 명의 주인공은 각각 카지노 뽀찌의 고향 과들루프를 구성하는 두 개의 큰 섬인 바스테르와 그랑테르를 상징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들루프의 상처를 빗댄 것이다.
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카지노 뽀찌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은 '올드 소울-뉴 소울(오래된 영혼-새로운 영혼)'로 여러 세대에 걸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전시장 1층에 배치된 두 점의 타악기 나뭇조각이 이를 보여준다. 할아버지 대로부터 3대째 목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카지노 뽀찌의 가족 내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시된 모든 작품의 공통점은 하나. 아슬아슬해 보이는 동작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지노 뽀찌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남긴 폭력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다.
모노타이프는 물감을 떨어뜨린 금속 또는 석판 위에 종이를 덮어 인쇄하는 표현 기법이다. 물감이 금세 마르는 탓에 즉흥적이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게 묘미다. 카지노 뽀찌는 미국 유학시절인 1976년 모노타이프를 처음 접했다. 새로운 기법을 물색하던 젊은 시절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조국의 정치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희망찬 제목과 달리 작품이 풍기는 인상은 위태롭다. 실제로 혁명의 결실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체제에서 압제가 오히려 심해졌기 때문이다. 1980년 카지노 뽀찌가 이란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연 회고전이 폐쇄된 사건이 단적인 예다. 카지노 뽀찌는 혁명의 기록을 담은 회고전을 열었는데, 현지 언론으로부터 '반(反)혁명적'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이번 전시작 중 3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카지노 뽀찌가 미국 마이애미에 정착한 뒤 남긴 작품이다. 이란혁명 이전에 제작한 작품이 대부분 소실된 영향이 컸다. 상실감에 빠진 카지노 뽀찌는 고향의 풍경과 혁명의 기록, 마이애미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14·17인치 프레스로 만든 여러장의 모노타이프를 이어 대형 판화를 제작하는 등 새로운 기법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