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차무식 청와대 가까이에 말괄량이 여고생들 '배움집'이 있었다
입력
수정
[arte] 한이수의 서촌기행
1906년 개교 후 1989년 목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서촌 창성동에서 자리를 지키던 진명여카지노 차무식의 터
역사 깊은 자핫골 카지노 차무식의 배움집/ 뒤에는 푸른 백악 옆에는 경무대/ 봄가을 여름겨울 이곳에 배워/ 수려한 저 봉우리 우리 기상일세/ 오오 배달의 카지노 차무식이거라/ 오오 배달의 카지노 차무식이거라교가는 소재한 지역의 자연을 가사로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은 카지노 차무식 주변의 유명한 산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자주 쓰이는 가사는 '높은 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것과 강이 가사에 삽입될 때는 '**강을 따라 카지노 차무식의 유구한 역사가 흐른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진명여카지노 차무식의 교가에서도 어김없이 '백악'이 들어간다. 진명여카지노 차무식가 위치한 백악은 한양의 진산이기 때문에 안 들어가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다른 카지노 차무식 교가에는 없는 내용이 있다. 경무대. 청와대라는 이름이 쓰이기 전에는 경무대라 했다. 이승만이 대통령인 시절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인 경무대와 가장 가까운 카지노 차무식가 진명여카지노 차무식였다.
교가 처음 부분의 '역사 깊은 자핫골'에서 자핫골은 어디를 말할까? 카지노 차무식가 위치한 창성동에는 자수궁교가 있었다. 자수궁은 이성계의 7번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의 집이었는데, 세종 때는 후궁 가운데 비구니가 된 사람들이 머물던 곳이다. 보통 궁궐에서 모시던 왕이 승하하거나, 고변으로 왕이 바뀔 때는 왕을 받들던 여관(궁녀)들도 함께 물러나게 된다. 궁녀는 공인된 '왕의 여자'이기 때문이다.물러난 궁녀들은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는 것이 통상의 관례였다. 자수궁은 그런 비구니가 된 궁녀들이 묵는 곳이었다. 자수궁은 통인동, 옥인동, 효자동, 창성동이 맞닿아 네거리를 이루었고, 그 앞의 다리를 자수궁교라 했다. 이 동네 이름이 자핫골. 아마도 자수궁이 있어 잣골로도 불렸다. 또 다른 설명은 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자하문 터널이 나온다. 그래서 자하문 인근의 동네라 자핫골로 불렸다.
카지노 차무식가 목동으로 이사가기 전 이 카지노 차무식 말괄량이 여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였다. 아마도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기 위해 경무대로 떠밀려가는 1960년의 4·19 시위대도 보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1979년에는 지금은 무궁화동산으로 변한 '안가'에서 발사된 10·26의 총소리도 들었을지 모른다. 이런 정치적 격변들이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얼마나 긴장시켰을 것인가.
오래된 카지노 차무식답게 카지노 차무식의 상징인 뱃지도 1948년 9월 이순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등대와 돛단배, 파도 모양이다. '이명래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 선생의 막내 동생 이순석은 우리나라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인들의 아지트인 '낙랑파라'를 열었고, 지금 국회의사당의 앞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해태상도 그의 손으로 탄생했다.그런데 이 카지노 차무식가 목동으로 이사간 것은 카지노 차무식의 지리적 위치와 관계가 있다. 경무대가 코 앞이라 카지노 차무식의 위치는 더 없이 좋았으나 체육 시간에도 함부로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낮 시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낮잠 자는 시간이라서 학생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들썩하던 이 동네는 이사도 가고, 길이 넓어지면서 민가들이 사라지고 지금은 참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1929년 4월22일 이 카지노 차무식 학생 120명이 탄 전차가 전복되었다. 전차는 효자동 종점을 출발해 적선동 서십자각에서 커브를 틀다가 전복한 것이다. 정원 이상의 승객을 태운 것과 운전사 과속이 문제였다. 사고가 얼마나 컸느냐하면 120명의 학생 중에서 88명이 경성의전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학생들은 개교기념일만 되면 순헌황귀비의 릉에 가서 참배도하고 꽃 놀이도 하고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4월22일 개교기념식을 마치고 순헌황귀비릉에 참배를 하러가기 위해 전차를 타고 가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한이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