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카지노 룰렛 준비하는 이들은 타인이 고통받길 기다린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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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룰렛 준비하는 사람들카지노 룰렛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수없이 많다. 기후 위기와 정체 모를 바이러스, 외계의 침공 등 상상력이 가미된 재난 상황은 인기 소재다. 그런데 막상 재난 자체가 중요한 경우는 드물다. 궁지에 내몰린 인간 군상의 어두운 내면이 진짜 주제인 경우가 대다수다.
마크 오코널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336쪽|2만2000원
최근 출간된 <카지노 룰렛 준비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른 창작물과의 차이가 있다면 실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저널리스트인 마크 오코널이 세계 각지의 '프레퍼'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다. 프레퍼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고, 비상식량을 한가득 마련하고 있다.
카지노 룰렛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싹튼 건 2010년대의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내려온 북극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위화감을 느꼈다. TV 제작 과정에서 소모되는 광물과 연료조차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에 일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환경 파괴 없이는 환경 파괴를 알아채지 못하는' 역설에 빠진 저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보게 됐다.
미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생존지침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레퍼들의 행동 이면에 감춰진 의도를 분석한 심리학 교양서에 가깝다. 저자는 "이 책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쪽은 현재다"라고 강조한다. 공상과학(SF) 장르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이미 일상에 스며든 카지노 룰렛의 기운을 경고하는 책이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