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그려내는 대상은 무엇일까? 화가 세잔은 자신이 그리는 것을 ‘자연과 평행을 이루는 구조와 조화’라고 말했다. 예술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방인의 시선카지노 민회장 낯설게 바라보며 모든 것을 명징하게 규명하기만 하려는 사물의 세계를 벗겨내고 그 위에 가치의 세계를 채색해야 한다. 건축이 채색하는 캔버스는 실제 세계 그 자체다. 작품과 세계 사이에 캔버스, 종이 혹은 스크린과 같은 경계가 없기에 예술가의 세계관이 손쉽게 투영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거대한 대지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은 수많은 물리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해야 하고, 또 여러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 유연함도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확신과 그 확신을 밀고 나갈 대단한 열정과 에너지의 소유자여야 할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제안하는 그런 유형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바로 그런 유형의 인물로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서라도 손꼽을 만하다. 젊은 날 사각의 링 위카지노 민회장 자신의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어야 했던 그는 링카지노 민회장 내려온 뒤에도 자신의 스트레이트를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꽂아 넣으려 했다. '건축을 전공한 적이 없지만, 독학만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는 그의 서사는 건축이라는 낯선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흥미도 충분히 끌어낼만하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Tadao Ando)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화가가 하나의 주제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해 나가듯 건축가의 언어도 반복된다. 안도 다다오는 국내에서 가장 쉽게, 또 빈번하게 그 언어를 경험할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많은 카지노 민회장이 그처럼 노출 콘크리트를 원료로 하여 문화적 랜드마크가 되는 것을 꿈꾸지만 동일한 원료를 사용했다고 해서 동일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빛과 물, 나무 혹은 자연 경관과 같은 모든 요소를 예술적 질료로써 승화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에서 나온다. 그렇게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고 재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건축가의 손에서만이 독특한 형태의 건축적 경험이 탄생한다. 또 그런 카지노 민회장에서만이 해소되는 욕구가 있다. 자꾸만 무언가를 채워 넣으라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하며 의식적 날숨을 내쉬고 싶은 욕구. 그 날숨은 인간을 위해 특정한 목적의 카지노 민회장으로 기능해야 하는 건축의 본질적 측면을 거부한 무용한 카지노 민회장에서만이 내쉬어진다.
이 섬에서 14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다다오는 오사카시의 강에 있는 섬 중 하나인 나카노시마에 지상에는 도시공원을 지하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문화시설을 넣으려는 자신의 구상을 오사카시에 제안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직접적으로 거절당한 그 구상을 나오시마에 구현했다고 언급한 적은 없지만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라는 그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 지상은 자연에 그대로 돌려주고, 대지 아래에 다양한 형태의 카지노 민회장을 구성하면서도 자연의 경관을 유지하려 한 컨셉은 아마도 오랫동안 그가 품고 있던 건축에 대한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지중미술관은 세 개의 각기 다른 컨셉의 전시 카지노 민회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들을 연결하는 카지노 민회장에 그 컨셉이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에 있는 뮤지엄 산(Museum SAN)에서 볼 수 있던 것과 유사한 카지노 민회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정오쯤이 되자 태양광이 콘크리트 위에 하얗게 바랜 역삼각형을 만들고, 그 모서리는 벽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선의 모서리와 맞닿는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카지노 민회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수직축으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는 벽면이다. 이 벽은 먼저 관람객의 눈에 어둠을 인식하게 만든다. 벽의 좌측으로 들어서면 전시실과 입구 중간에서 무용한 카지노 민회장을 만나게 된다.
전시실만큼이나 커다란 이 카지노 민회장의 어둠은 전시실을 향해 열린 개구부로 들어오는 빛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빛은 그 강도와 상관없이 오직 어둠 속에서만 빛이 될 수 있다. 환하게 쏟아지는 듯했던 그 빛은 막상 그 중심에 보이는 모네의 수련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천정의 모서리로 반사되어 들어오는 희미한 산란광이다. 몇 번의 반사를 거친 산란광은 전시실을 미약한 빛으로 채울 뿐이지만 그 빛을 찬란하게 느껴지도록 전시실만큼이나 큰 카지노 민회장과 전시실을 나누고 그사이를 직사각형의 개구부로 연결하여 관람객이 먼저 어둠을 만나도록 설계한 것이다.
제임스 터렐 작품인 <오픈 필드 역시 로스코의 추상적 색면과 같은 카지노 민회장 속으로 관람객이 걸어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계단 아래에서 보면 단색의 평면으로 보였던 카지노 민회장이 계단을 오르고 나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카지노 민회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오픈 스카이역시 카지노 민회장 자체가 작품인데 높게 형성된 천정에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사각의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이곳은 입구 카지노 민회장을 제외하고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그 제약은 단순히 관람객을 상자에 태워 일률적 동선으로 작품을 관람하고 퇴장하게 만드는 기계적 발상과는 다르다.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인증하고 싶은 욕구도 벗어던지고 관람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만큼은 그 작품 그 자체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 작품이 되는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제안은 이 섬에 있는 다른 카지노 민회장들, 이우환 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안도 뮤지엄 등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 제안은 성공한 것일까?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사람들을, 카지노 민회장을 통해 끌어들이려는 그의 구상은 성공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