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도림역에서 영등포역 쪽으로 가다 보면 양쪽에 작은 공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문래동은 마치코바(도심속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밀링 도금 열처리 등 금속가공업체 수천개가 둥지를 틀고 있다. 대부분 직원 5명 이하의 영세기업들이다. 이곳 철길 부근에 유수기공이 있다. 100㎡(30평) 남짓 작은 공장이다. 임직원이래야 유대수 사장(54)을 합쳐 모두 3명. 하지만 이곳에서는 미사일 부품도 가공되고 일부 기계 부품은 독일로도 수출된다. 이 업체에 어떤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기자는 문래동 버스정거장에 내린 뒤에도 유수기공을 찾지 못해 10여분을 헤맸다. 수백개의 작은 공장이 지붕을 맞대고 있는 데다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아서다. 두 번째 전화를 걸어서야 한 사람이 골목길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키(165㎝)지만 건장한 체격의 유대수 유수기공 사장이다.

목장갑에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이다.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작업을 하다가 나온 것이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윙’하며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름냄새가 물씬 풍겼다. 호이스트크레인과 대형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4대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가 10m가 넘는 설비들이다. 이 건물의 한 지붕 아래 3개 공장이 있는데 이 중 1개 공장을 유수기공이 쓰고 있다. 문래동은 대부분 임차공장이다. 유 사장 역시 세를 얻어 작업하고 있다.

좁은 공장 안은 대형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과 재료로 가득차 서있을 곳조차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구석에 가파른 철제 계단이 나왔다. 유 사장은 “머리 조심해유”라며 낮은 천장을 손으로 탁탁 쳤다. 기다시피해서 올라가자 한뼘 크기의 다락방사무실이 나왔다. 벽에는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귀절이 붙어 있었다.

이 회사가 가공하는 제품은 산업기계부품 굴착기부품 등 다양하다. 미사일의 정밀부품도 이곳에서 만든다. 그는 “문래동에는 50년 이상 금속가공을 해온 장인들이 많아 짬밥만으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며 “다만 대형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작업은 영등포에서 잘하는 축에 들 것”이라고 조심스레 자랑했다. “40년 동안 기계밥을 먹다 보니 소리만 들어도 작업 속도가 적정한지, 쇠가 제대로 깎이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그의 나이 14살 때부터다. 올해로 꼬박 40년째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거봉포도로 유명한 충남 입장으로 이사했다. 입장중에 다니다 2학년 때 중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7남매의 셋째인 그로서는 등록금을 마련할 재간이 없었다.

그의 진로는 천안역에서 갈렸다. 잠시 천안역 앞 음식점에서 삐끼 생활을 했다. 어떤 중년신사가 지나가길래 무조건 팔을 잡아끌며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뜻밖에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기술 담당)였다. 자신의 입학금을 대주기도 했던 그 선생님은 음식점에서 설득했다. “너 학교 중퇴하더니 고작 이런 데서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당장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라. 그러면 평생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거다.”

그 길로 상경해 당산동 남도극장 옆 중국집에서 철가방을 들기도 했으나 오래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해 온수동 주물공장에 취업해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작업을 배웠다. 이게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인생의 시작이다. “온수동에선 공장안 야전침대에서 잤는데 눈이 오면 갈라진 벽틈으로 눈이 날아 들어와 얼굴에 앉곤 했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 난로 앞에서 불을 쬐다 깜빡 졸아 무릎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뒤 고척동과 대림동에서의 직장생활을 거쳐 1986년 문래동에서 창업했다. 이 일대는 원래 공장지대다. 근처인 양평동 신도림동 영등포동에 해태 롯데 방림방적 진로 동양맥주 크라운맥주 등이 있었고 인근 공구상가에서 각종 공구와 자재를 구할 수 있었다. 그중 문래동은 금속카지노 슬롯머신 규칙의 메카였다. 이곳은 ‘쇠로 된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 금속쟁이들의 집합소다.

유 사장은 이곳에서 산업기계부품, 전철용 모터박스, 굴착기부품, 방산부품 등을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한다. 그가 오랫동안 일감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40년 동안 외길을 걸어오며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실력을 쌓은 데 따른 것이다. 그는 “금속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분야에선 졸업이란 없다”며 “지금도 배우는 자세로 일한다”고 말했다.

둘째, 급한 주문도 소화한다. 유수기공은 부품에 따라 2차벤더나 3차벤더에 속한다. 이 중 금요일에 급하게 찾아와 월요일까지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발주자도 종종 있다. 이런 오더도 거절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을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셋째, 윈윈하는 자세다. 그는 주문자 입장을 배려하면서 상생하는 방안을 찾는다.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주문은 동료 기업인들과 나눠 작업한다. 대신 품질을 철저히 유지하고 납기를 반드시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유 사장은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기술을 익혔더니 평생 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대학에 간 친구들은 이미 은퇴했거나 정년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이들이 오려고 하지 않아 카지노 슬롯머신 규칙 기능인력의 대가 끊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잔업을 포함할 경우 월 400만원 이상 받는 사람도 많다”며 “대학을 나온 뒤 노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업계 교육을 강화해 이런 뿌리산업에 와서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자와 함바식당에서 10분 만에 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그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데도 밀린 작업을 해야 한다며 공장으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