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과의 딸', 결혼 35년간 숨긴 남자…속사정 봤더니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행복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업 카지노
삶을 덮치는 아픔 견디며
따뜻한 행복만 그림에 담았다
르누업 카지노의 삶과 작품 이야기
삶을 덮치는 아픔 견디며
따뜻한 행복만 그림에 담았다
르누업 카지노의 삶과 작품 이야기

하지만 부드럽고 화사한 그림과 달리 화가의 마음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오래 전 가난 때문에 곁을 떠나야 했던 연인과 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성공한 화가였더라면, 돈을 잘 벌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녀와 내 귀여운 딸도 지금 이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 앞에 앉아있었을 텐데….’
그의 이름은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업 카지노(1841~1919).르누업 카지노는 11년 전 사귀던 연인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딸을 입양 보낸 뒤 연인을 떠나보냈습니다.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 후 르누업 카지노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하지만 이런 괴로움은 르누업 카지노가 평생 겪었던 고통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삶에는 수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르누업 카지노는 집요할 정도로 행복한 그림만을 그렸고,‘행복의 화가’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르누업 카지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행복한 그림만 그렸던 걸까요. 오늘은 그의 삶과 작품을 깊숙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매일 굶어도 즐거웠던 젊은 화가

르누업 카지노는 성실하고 실력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시하는 ‘정답’대로 그리는 대신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 중 한 명이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너, 그냥 너 좋자고 그림을 그리는구나. 그렇지?”가르쳐주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주의를 준 거였지요. “죄송하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느낌의 대답을 기대했을 텐데, 르누업 카지노가 내놓은 답이 예상 밖이었습니다.“당연하죠,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 않으면 왜 그림을 그리겠어요?”
그 학교엔 르누업 카지노처럼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는 젊은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클로드 모네였지요. 이들은 곧 친구이자 동료가 됐고, 서로의 그림을 평가하고 토론하며훗날 ‘인상파’라고 불리는 그룹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인과 딸, 가난 때문에 보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르누업 카지노는 1866년 일곱 살 연하의 그림 모델인 리즈 트레오와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이 담겨서였을까요. 르누업 카지노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리즈’, 그리고 ‘알제의 여인’은 르누업 카지노의 젊은 시절 그림 중에서도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입양을 보내고, 리즈는 르누업 카지노를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거였습니다.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이렇게 사생아를 낳고 입양 보낸 뒤 완전히 잊어버리는 일은 아주 흔했습니다.결국 둘은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따 잔 트레오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좋은 양부모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둘은 헤어졌습니다.


결혼과 성공, 그러나 찾아온 병마
또다시 세월은 흘렀습니다. 37세의 르누업 카지노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주인공은 18세 연하의 모델, 알린이었습니다. 알린은 다소 집착이 심하고 통제 성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르누업 카지노의 눈에는 그런 성격도 그저 귀여워 보이기만 했습니다. 같은 시기, 르누업 카지노는 미술계에서도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주머니 상황도 서서히 나아져 갔습니다.

관절염이 진행되면서 르누업 카지노의 손은 새 발톱처럼 휘었습니다. 거즈 붕대를 감지 않으면 손톱이 살에 파고들었습니다. 몸은 수시로 마비됐고, 체중은 44kg까지 빠졌습니다. 좋아하던 산책도 못 하게 됐습니다. 아예 걸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도 모두 빠져버렸습니다.그런데도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굳은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운 후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놀라는 사람들에게 르누업 카지노는 말했습니다. “대작을 그릴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림 그리는 데 손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네.”

숨겨둔 딸을 들키다
그러던 중 르누업 카지노에게 또 하나의 어려움이 닥칩니다.아내에게 35년간 숨겨왔던 딸, 잔의 존재가 결국 발각된 겁니다.그 긴 세월 동안 르누업 카지노가 숨겨둔 딸과 몰래 편지를 주고받으며 돈을 보내줄 수 있었던 건, 첩보 드라마 뺨치는 보안 유지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딸에게 용돈을 송금했습니다. 그 주요 인물 중 하나는 르누업 카지노의 집에서 10년 넘게 가정부 겸 간호사, 보모로 일했던 가브리엘이었습니다. 르누업 카지노는 가브리엘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가브리엘도 르누업 카지노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가족을 성실하게 돌봐왔던 가브리엘을 하루아침에 해고하라고 강요한 건,르누업 카지노가 아끼고 의존하는 사람을 쫓아내서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하지만 그 말에 어떻게 거역하겠습니까. 이즈음 르누업 카지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가브리엘의 해고로 인한 상실감과 슬픔을 잘 드러냅니다. “인생은 강물에 내던져진 코르크 조각과도 같지. 빙빙 돌다가 실려 가고, 튀어 오르고 잠겼다 떠오르기도 하다가, 잡초에 걸리면 벗어나 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다가 사라지고 마니까 말이야.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신만이 알겠지.”
이런 상황에서 1차대전에 참전한 장남 피에르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총알이 팔을 관통하는 바람에 팔을 못 쓰게 돼버렸습니다. 그도 모자라서, 둘째 장마저 전쟁터에서 허벅지 윗부분에 총을 맞았습니다. 장은 이 부상으로 평생 발을 절뚝이게 됩니다. 1915년에는 알린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도, 행복
르누업 카지노의 건강도 계속 나빠졌습니다. 평생 긍정적이던 그도 1917년 “이제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됐습니다. 1918년에는 순환 장애로 한쪽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고요.하지만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섬세한 터치는 불가능했지만, 여전히 조수 없이 스스로 붓을 놀렸습니다. 이 광경을 직접 본 이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네는 친구에게 “르누업 카지노가 그토록 아픈데도 그림을 그린다는 건 정말 놀랍다. 영웅적인 그 행동이 경외심과 영감을 준다”고 했고요. 벨기에 화가 테오 반 리셀베르그는 “몸이 반쯤 썩은 이 화가가 아직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감탄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존경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의 78년 인생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특히 가난과 질병은 먹구름처럼 평생 그의 삶에 슬픔과 고통을 뿌렸습니다.하지만 르누업 카지노는 이 모든 아픔이 자신의 그림에 스며드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밥을 굶을 때도, 세상이 그의 작품에 돌을 던질 때도, 딸과 생이별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자신의 곁을 떠날 때도, 격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도 오직 행복만을 그렸습니다. 모든 순간 르누업 카지노의 손이 붓을 건드릴 때마다 캔버스에는 어김없이 행복이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르누업 카지노의 작품은 행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그가 평생 남긴 총 40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은 인간의 위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념비이기도 합니다. 운명이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끈질긴 집념으로 행복을 캔버스에 담아낸, 한 인간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르누업 카지노가 최고의 인상파 화가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기사의 상당 부분은 50년 넘게 르누업 카지노의 삶을 연구한 르누업 카지노 연구의 권위자 Barbara Ehrlich White의 'Renoir : An Intimate Biography'의 시각과 견해를 따랐습니다. 이 밖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업 카지노'(페터 파이스트 지음,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타셴) '르누업 카지노'(알렉산더 아우프 데어 에이데 외 지음, 김영선 옮김, 예경), '르누업 카지노'(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최병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르누업 카지노'(안 디스텔 지음, 송은경 옮김, 시공사)를 참조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2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 업 카지노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