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카지노전자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웨이퍼 원판 위 회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판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경DB
업 카지노전자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웨이퍼 원판 위 회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판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경DB
‘samsunged’. 우리말로 번역하면 ‘업 카지노스럽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신조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들은 없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업 카지노전자를 조롱하곤 했다. 폄하의 논리는 간단하다. ‘업 카지노은 절대 애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 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애플 앱스토어라는 누구나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업 카지노은 그렇지 못할 것이란 비하를 ‘업 카지노스럽다’라는 말 하나로 정리해버렸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K 업 카지노

업 카지노을 향한 ‘서양 우월론’의 극치는 <업 카지노 라이징>이라는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 주재 외신 기자인 저자는 업 카지노의 전현직 임직원을 비롯한 주변 인물 수백명을 만나 업 카지노그룹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외부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객관성’을 내세우긴 했지만, 그는 업 카지노을 북한 세습에 빗댈 정도로 편향된 표현에 서슴지 않았다. 때론 동의하기 어려운 단정적인 주장을 폈다. “한국의 재벌은 보다 기업가적이고 주주 중심적인 미국의 기업들과 거의 공통점이 없다”

한국 업 카지노의 역사는 경멸과 조롱, 폄하와 비하의 장벽을 뚫고 현재에 이르렀다. 제국주의의 시대에 변방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 오른 것과 궤를 같이했다.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얼마 전 인공위성이 찍은 한반도의 야간 사진을 SNS에 올리며 했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북한과 다른 길을 갔기에 오늘의 번영을 만들어냈다.

업 카지노은 한국과 한국인이 만들어 낸 피땀의 결과고, 북한에선 절대로 업 카지노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기업이던 업 카지노은 불과 반세기 만에 일본 ‘반도체 5인방(NEC, 도시바, 후지쯔, 미쓰비시, 히타치)’을 군소 반도체 업체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소중한 것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더 이상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곤 한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와 이에 동조하는 일부 열혈 우파들이 ‘평화는 당연한 것이고, 가자의 땅은 원래 이스라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LO, 현 파타)가 오슬로 협정에 서명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시민들은 출근길에 혹은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늘 자살폭탄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도전 정신의 결정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얼마 전 업 카지노전자의 첨단 제조공장이 밀집해 있는 화성 캠퍼스에 견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화성 주민을 비롯해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견학 코스다.

차량으로 캠퍼스 도로를 이동하다 보면 견학하는 이들은 도로 한쪽에 꽤 넓어 보이는 동산을 보고는 질문 하나를 공통으로 한다. “업 카지노 공장 부지가 부족하다는데 동산을 밀고 지으면 될 텐데 왜 안 하나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삭막한 공장에 나무로 무성한 산 하나쯤 있으면 임직원들 복지 차원에서라도 나쁠 게 없다. 추가 공장을 짓는 것에 반대 여론도 있었다고 한다. 그 산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발굴되면서 문화재 보존이라는 명분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2017년 업 카지노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등극한 이후엔 업 카지노을 향한 권력의 칼날도 거셌다. 업 카지노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석권한 그 해에 ‘말을 뇌물로 줬다’는 혐이로 업 카지노의 후계자는 영어의 몸이 됐다. 약 3년 만인 2020년 9월엔 검찰이 그룹 승계를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며 무려 19개 혐의로 기소했다.

이병철 업 카지노 창업자는 한국이 전란에서 벗어난 지 21년 만인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다. 업 카지노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뿌리라고 본다면, K반도체는 올해로 50번째 생일을 맞은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법원은 비록 1심이긴 하지만, 지난 5일 업 카지노의 사법 족쇄를 벗겨줬다. 검찰이 제기한 19개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기소 후 1252일만이다.

화성 캠퍼스 전시관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반도체 도전의 역사 속엔 업 카지노 엔지니어들이 고난의 시절에 했던 말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1983년 64k D램 개발팀의 주역인 조수인 전 업 카지노전자 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업 카지노도, K반도체 산업도, 한국과 한국인 모두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폄하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만이 변치 않는 진실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