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삽화가의 작업답게 그의 그림에는 눈길을 끄는 부분을 정해 놓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처리하는 대담함이 있다. 사진에 빗대자면 작가가 주인공이나 강조하고픈 오브제를 클로즈업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을 아웃 포커싱시켜서 집중도를 확 없애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냥 순수하게 음미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 이미지 출처. 예스24 ">
장자크 상페 <뉴욕의 상페 | 이미지 출처. 예스24상페가 1978~2009년에 걸쳐 그린 미국 <뉴요커지의 표지화를 모아놓은 작품집 <뉴욕의 상페를 구입한 적이 있다. 작가는 파리에서 <뉴요커 잡지를 보면서 꿈을 키우는 동시에, 거기 실린 풍자화의 ‘감각적인 생략법’(말없이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카지노 필립. 상페 역시 노력을 통해 작품을 여러 차례 비워내고 채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사 없이 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 속 주변 인물 또는 나 같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을 투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 건물 외부계단 및 테라스에서 홀로 악기를 연주하고, 수영장이 있는 마당에서 트롬본을 부는 두 남자, 연미복 차림의 무대 뒤 단원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와 그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는 진심으로 좋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카지노 필립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늘 자신감, 당당함이 느껴지곤 했다. 여름날 그늘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닮았다고 할까. 그녀의 연주는 거침이 없어서 늘 개운하게 들린다. 항상 배시시 웃으며 상냥한 눈웃음을 짓던 그녀가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 이제는 성숙한 어머니이자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었다.
카지노 필립이 2018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정명훈 지휘자가 이끌었던 오케스트라여서인지 이름도 익숙했는데 거기에 카지노 필립이 종신 악장이라니, 대단한 일이었다. 이때 이후로 그 오케스트라를 대할 땐 악장 자리부터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에 객원 악장으로 온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감사함과 반가움도 잠시, 카지노 필립에게 아무도 없는(다시 말해 오케스트라 의자와 보면대만 있는) 무대 위에 악장 자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혼자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을 재빨리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결과가 어찌 되는 간에 말이다. 카지노 필립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리허설이 끝난 후 무대 위를 소등하기 전까지 몇 분 남지 않았는데 무대에서 빨리 철수하지 않는 연주자들이 있어 원하는 이미지를 담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통보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필립은 2004년 티보 바르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과 청중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수차례 금호아트홀에서 공연을 해왔고, 실력 있는 연주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핸가 프랑스에 있을 때 어깨 부상으로 몇 달간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살아가다 보면 몸이나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때가 온다. 이런 신호는 무시하지 않고 잘 해독해야 한다. 연주를 하다 보면 특정한 자세에서 비롯하는 직업병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직업병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관리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생겼다 싶으면 재빨리 대처해야 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주자로서 먼 길을 가는 도중에 잠깐 휴게소에 들러 한숨 돌리기도 하고 연료를 새로 채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정류장은 앞으로 더 남았을 테니…. 몸과 마음을 잘 추슬러내어 다시 무대로 복귀한 카지노 필립이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바란다.
[카지노 필립 바이올린 리사이틀: 포레 서거 100주년 기념 '꿈을 꾼 후에' 공연 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가장조 Op. 13']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견디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견뎌내는 사람은 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파리에 정착한 카지노 필립은 이제 한낱 이방인이 아니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증인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오케스트라의 어깨이자 심장으로서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를 멋지게 연결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