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둑길에는 새떼들도 밟지 않은 저녁놀이 카지노 꽁머니구나. 사과 속에서, 여름의 촌락(村落)들은, 마지막 햇볕을 즐기며 천천히 익어간다. 연한 풀만 가려 뜯어먹던 암소는 새끼를 뱄을까. 암소가 울자 온 들녘이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그득하다. 지붕 위에 초승달 뜨고, 오늘 저녁, 딸 없는 집에서는 저 초승달을 데려다가 딸로 삼아도 좋으리라. 게를 잡으러 갔던 아이들은 버얼겋게 발톱까지 게 새끼가 되어 돌아오고, 목책이 낮아, 목책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기만 하던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져 돌아온다. 처녀들이 몰래 들어가 숨은 꽃봉오리는 오늘 저녁, 푸른 저녁 불빛들에게 시집가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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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운 일상을 잠시 잊고 평화로운 들길을 한번 감상해 볼까요.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지 모릅니다. 이 카지노 꽁머니운 시의 배경은 뜻밖에도 장인어른의 죽음이었습니다.
“지난 6월 초 건강하던 빙장어른이 갑자기 작고하셨다. 그 빙장어른의 49재가 마침 여름방학과 겹치는 때여서 아예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죽음처럼 슬픈 게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일 뿐, 죽음과 무관하게 세상은 마냥 밝게 빛났다. 산 자의 몫인 생은 여전히 카지노 꽁머니고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는 아랑곳없이 들녘으로 개구리, 여치,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그들의 녹색으로 빛나는 생 어디에도 깊이 음각된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과연 죽음이 우리의 생과 무관하기만 한 것일까? 죽음이 있기에 우리 생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고 카지노 꽁머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조곤조곤 답합니다.
“여름 저녁놀은 정말 카지노 꽁머니웠다. 산 자에게만 허락되는 이 축복받은 시간들, 살아 있음의 이 황홀함, 그런 정서적인 울림이 컸기에 여름 저녁은 실제보다 더 곱고 카지노 꽁머니웠으리라. 둑길의 저녁놀, 암소의 느릿한 울음, 조용히 저녁의 열기 속에 휩싸여 있는 여름의 촌락, 낮은 목책들, 지붕 위에 뜬 초승달, 그리고 개펄에 싸라기별이나 드나들 만한 게 구멍을 파고 사는 게 새끼들을 잡아 가지고 오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 이런 밑그림들이 이 시를 구성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어두운 쪽에서 보면 밝은 쪽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죽음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시인에겐 산 자만이 지켜볼 수 있는 생동하는 삶이 더없이 카지노 꽁머니게 보였겠지요. 그러기에 이 시는 더없이 밝은 분위기로 충일해 있습니다.
이 시를 쓰면서 시인은 다시금 생각합니다. 생의 빛나는 부분들을 사랑하며 노래하면서 살아 있음의 기쁨과 환희를 더 즐기고 싶다고. 고통이나 허무, 고뇌, 이런 것들도 우리 삶의 가치로운 부분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과 카지노 꽁머니움, 사랑도 소중하기에 더 건강하고 밝은 쪽에 눈길을 주고 그것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로 등단한 뒤, 1974년 ‘심상’ 신인상 시 부문에도 당선했습니다. 한국동시문학회장을 지낸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맑고 투명한 동심을 노래한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 봄에는 시집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습니다. 동료 시인들이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이지요.
그 시집 표제시에 “나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고/ 가족들이 건널 다리가 되어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널 때면/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춘다/ 아직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고 싶은/ 꿈이 남아 있기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처럼 그는 ‘성자의 발에 입을 맞추듯/ 무릎을 꿇고 다리에 입을 맞추’는 자세로 시를 씁니다. 내친김에 ‘카지노 꽁머니’이라는 맑은 시 한 편을 더 감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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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은 카지노 꽁머니구나. 카지노 꽁머니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카지노 꽁머니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카지노 꽁머니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카지노 꽁머니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카지노 꽁머니움을 보자.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