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직원이었던 나는 책의 3교 다음 ok를 놓고, 가제본을 끝낸 책을 들고 시청의 군인들에게 검열받으러 갔다. 어느 땐 그들이 지운 잉크로 본문이 다 지워진 책이 숯 덩어리가 된 적도 있었다. 저자를 찾아가 한없이 울었다. 후에 그 책은 대사 없는 무언극으로 공연되었고, 그 저자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노동운동을 선구적으로 시작했던 여성의 일대기를 번역서로 출간한 적도 있었는데, 그 책의 역자인 그녀의 거처나 전화번호를 대라면서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처음 이 대목을 읽던 날의 공포를 기억한다. 홧홧하게 타오르는 뺨과 먹먹한 고막과 무너지는 존엄에 관해 생각했다. 그녀가 출판사를 결근하며 하루에 한 편씩 써 내려간 시들을 읽으며 먼 과거의 순간에 이입하면서도 이를 낯설게 느꼈다. 그런데 이 미지의 과거가 올겨울 나의 뺨을 치고 지나간 기분이다. 어두운 방, 침대에 앉아 내가 지금 다듬고 있는 소설들을, 이 작품들을 쓴 작가들을 떠올리며 근심했다.
김혜순의 시가 늘 시대와 그 시대의 언어와 그 시대를 받아내는 제 자신의 몸과 싸워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시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어김없이 독서의 재개를 촉구하면서 지금-여기의 지평에 미리 도착한 미지의 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야 깨닫는다.
- 오연경 해설, 『어느 별의 지옥』, p. 109
김혜순 시집 『어느 별의 지옥』 (문학과지성사, 2017(초판: 1988))우리 동네 언니는 이제 잘 산다. 그 뒤에 대학원도 다녔고 은퇴를 늦추며 아직도 일한다. 찬 바람 부는 거리 위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더 이상 악몽이 없는 날들이 이어질 수 있길, 누군가 언니와 같은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문학은 힘이 없어서 힘이 있다. 시는 온몸으로 활활 타면서 진리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내가 배운 문학은 올해 가장 놀라고 노엽고 두렵던 그 순간 내게 왔다. 김혜순이 1988년에 묶었던 미지의 언어가 지금-여기 다른 이에게도 닿아 그/녀를 일으키고 깨울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