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쿠루는 자신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손은 점점 희미해졌고, 발은 마치 땅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듯 공중에 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속 한 장면이다. 주인공 쓰쿠루는 꿈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오간다. 여기 상상 속에 사실을 담고 꿈속에서 현실을 그려낸 근현대의 두 화가가 있다. 근대의 카지노 사이트과 현대의 최민정이다.
카지노 사이트 <마을(1951), 종이에 유채, 26x3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카지노 사이트미술문화재단 제공감히, 자신했다. 잘 알고 있다고. 직접 참여했던 전시에서 자주 카지노 사이트의 작품을 만났다.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서 일했다. 작년 겨울의 끝자락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향했다.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가장 진지한 고백: 카지노 사이트 회고전》이 열렸다. 들어섰다. 익숙한 그림들을 스쳤다. 반가웠다. "아기자기해” "새랑 나무가 너무 귀여워” 꺄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응 맞아, 어렵지 않아. 친숙하고 정겹지’ 인증샷을 찍는 소녀들에게 동의하며. 함께 즐거워졌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여느 때처럼.
그때였다. "언니, 우리 어릴 때 생각나지 않아? 가족끼리 가까이 살아서 매일 만났잖아”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함께 간 사촌 동생의 말이다. 눈길을 좇는다. <마을(1951)이다. 두 번째 만남이다. 알은체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낯설어졌다. '이들은 과연 평온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초가집 속 사람들에 대해서. 단란하다고만 믿었는데. 물음은 차츰 커져갔다. 동물들이 달라 보인다. 붉은 소와 검은 개가 서성인다. 노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과 나무와 가족과 까치들까지. 카지노 사이트 그림의 모티프들이 모두 담겨있다. 친숙한 장면이었다. "캔버스 속 풍경은 안온한 걸까?” 물음이 생겼다. 그 날 동생에게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미술사학도로서도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도. 전시장을 나서며 내게 숙제를 남겼다. 찾아야 했다. 생경함의 이유를.
부족함 없이 태어났다. 대대로 부농 집안이었다. 시서화를 애호하던 집안 분위기 속 어린 카지노 사이트은 곁길을 낸다. 밥보다 그림이 좋았던 소년이었다. 8살 때부터 몰두했고 10살에 유화를 그렸다. 카지노 사이트은 이미 결정했다. 자신의 삶을. 현실은 재능을 질투한다. 어김없이. 키워준 고모의 반대에도 기죽지 않았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을지라도. 학교에서 쫓겨나도 화가들의 작업실을 찾아다녔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의 부당함에 항의한 결과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의 저항 속에서 살며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들뜬다. 그 당당함에. 카지노 사이트은 양정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한 1938년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공기놀이로 출품 최고상을 받는다. 증명하는 삶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지켜내고자.
새삼 깨닫는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인체는 과장되고 왜곡되었다. 모던함이 흐른다.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의 무사시노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서 유학했다. 카지노 사이트은 서양의 미술사조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실험하고 펼쳐냈다. "카지노 사이트이 (유학시절) 기형적으로 그린 것은 사실이야. 동양적인 데도 있고” 동급생이었던 화가 송혜수의 증언이다. 표현에 분방하던 날들이었다. 하나는 변치 않았다. 한국적 정서였다.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젊은 예술학도는 삐딱했으나 성실했다. 자유로웠으나 기본에 엄격했다.
<마을(1951) 속 나무들이 아른거린다. 퍼뜩. 생동하는 푸르름에 마음이 부푼다. 까치가 얌전히 가지에 앉았다. 손짓하고 싶다. 그 귀여움을 보고 있으면. 그래서일까. 이 다정함에 속을 뻔했다. 쉬운 그림이라고. 치밀하게 맞추었다. 좌우대칭이 완벽하다. 안정감의 이유였다. '어떤 이상향을 향하는 걸까? 현실에서 비껴서 있는 걸까’ 1951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전쟁 중이었다. 의문의 실마리를 더듬는다. 숙제의 답이 보일 듯하다. 가슴이 뛴다. 새롭게 읽히는 모티프들에. 그때였다.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개가 있다. 나무와 앞집 사이에 조그맣게 홀로. 가엾다. 검은 개의 감정이 궁금하다. 알게 된다면 카지노 사이트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으려나. 핍진한 시절 <마을을 그려낸.
쉬이 나아지지 않는 날들이었다. 해방 후 활기는 강제로 잠재워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카지노 사이트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고향인 충남으로 피란 생활을 이어간다. 고달팠으리라. 전쟁에 내휘둘린 피폐한 시절,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카지노 사이트은 계속 그렸다. 술로 절망을 달래면서. <붉은 소(1950) 속 남자가 팔을 베고 누워있다. 한갓지다. 동그란 그늘 속에 함께 앉아본다. <자갈치 시장(1951)을 보면 장을 보러 나서고 싶다. 활기를 느끼고 싶기에. 착각을 일으킨다. 평온하고 유희 가득한 날들 같아서. 그 밝음이 애처롭다. 카지노 사이트은 열의를 보였다. 부산 피란 시기 이중섭, 김환기, 백영수 등과 함께 '신사실파'로 활동하며 조형적 실험에 몰두했다. 예술에게 되감기는 없다. 포화 속에서도 전진한다. ‘카지노 사이트’이라는 장르도 싹트는 중이었다.
<마을(1951)에는 바람이 담겼다. 작은 캔버스 가득히. 초가집 속 여인들은 두 손을 모았다. 가지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걸까?’ 이 기다림은 카지노 사이트의 몫이었다. 피란지 부산에서 고향 충남으로 돌아온다. 아내와 자녀들과 이별했다. <마을은 당시의 작품이다. 캔버스를 구할 수 없어 종이에 그렸다. 짐작해본다. 그의 마음을. 한쪽 마음에 안도감을, 다른 한 편에 애달픔을 가졌을 터. 고향과 이별, 두 단어가 마을 풍경 안에 교차한다. 사실적이다. 지극히. 오른쪽 위 초가집 문이 열려있다. 아이와 엄마다. 자리를 비워두었다. 전해져온다. 그리움이. 문을 더 활짝 열어놓기를.
답을 써본다. <마을이 낯설어졌던 이유에 대해. 동의할 수 없어서였다. 전쟁의 비극을 찾을 수 없다는 어떤 해석에 대해서. 유토피아를 그렸다는 단순한 평에도. 우리는 자주 보이는 대로 단정한다. 무심하게도. <마을을 톺아본다. 아기자기 심은 꽃에 간절한 소망을 새겼다. 부디 밝게 피어나기를. 누워있는 농부는 편안할까. 고개가 꺾여있다. 무력함이 스친다. 발견했다. 풀밭과 나무속에서 동화가 아닌 리얼리즘을. 단순한 도상 속 깃든 애면글면함을. 묻고 싶다. "나는 심플하다”고 말한 카지노 사이트에게.
"그저 혼자 하고 싶은 것을 하시게 했다. 작품이 안 될 때는 스무날이고 꼬박 술만 드셨다” 아내 이순경은 말한다. 평생을 단 하나에 몰두했다. '단순하게’ 그려내는 것.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로 옮겨갔다. 스스로 택한 고독이었다. 카지노 사이트은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이상향을 좇았다고 덧붙이며. 다른 의견이다. 처절하게 분투하는 삶이었다. 꿈을 꾸되 현실을 직시하며. 검은 개가 짖는다. 남겨진 자의 비애를 토하며. 슬퍼지려는 찰나, 알아챘다. 숨어있듯 드러나 있는 해를. 곧 떠오르리라. 서서히 마을을 비추며.
상상 속에 피어나는 기억의 재현
(2024), 리넨에 유채, 150 x 200cm, 최민영 제공">
카지노 사이트 <해 달 차(2024), 리넨에 유채, 150 x 200cm, 카지노 사이트 제공만남이란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작가가 같다거나 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영상에서 그녀가 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본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면서. 카지노 사이트의 개인전 《꿈을 빌려드립니다》을 보러 마곡동으로 향한 이유다.
짙고 찬연한 색들이 쏟아진다. 마침 햇살이 비껴들어서일까. 전시장의 가벽까지 색들이 퍼지는 듯하다. 영하 10도의 날씨였다. 손과 발의 찬 기운이 남아서일까. 통창 가까이에 바짝 다가섰다. 빛이 더 쏟아진다. 그 순간 초록이 반짝거린다. 바로 옆 작품에서. <해 달 차(2024)와 마주섰다.
유난히 한파가 잦은 날들이었다. '여름인가? 부럽네’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모든 초록이 모여 있는 듯하다. 연둣빛이 펼쳐져 있다. 가득하게. 그 뒤로 짙은 녹색을 두른 산이 보인다. 여유롭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앉아있다. 느긋하다. 이 초원으로 들어가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시린 발끝에 온기가 돈다. 찰나였다. 날아오르는 사자가 보인다. 평온함에 살짝 균열을 낸다. 긴장이 몰려온다. 다시 본다. 시선을 깊게 둔다. 차를 마시는 두 소녀들에게. 다르다. 왼쪽 소녀는 낮에 오른쪽 소녀는 밤에 머문다. 예단은 부서졌다. 한낮의 풍경화라 여겼는데. 겸연쩍다. 현실의 장면인 줄 알았건만. 낯설어진다. 전시장 안에 서 있는 내가. 꿈인 걸까.
불현듯 한 마을이 떠올랐다. '마콘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 속 장소다. 줄거리는 한 줄 요약이 가능하다. 콜롬비아의 가상 마을 마콘도(Macondo)가 생겨나 사라지기까지를 부엔디아 가문 7대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첫 장에 질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복잡한 가계도를 맞닥뜨렸다. 똑같은 이름들이 끝없이 반복된다. '비현실적이야’ 첫 느낌이다. 몇 번의 좌절을 딛고 읽어나갔다. 빠져들었다.
노란 나비들이 몰려든다. 청년 마우리스키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듯이. 신비롭다. 곧 다시 현실로 끌어당긴다. 날개가 찢겨졌다는 세세한 관찰의 문장을 읽다 보면. 어지럽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마콘도를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연금술을 열정을 다해 학습한다. 실험은 과학적이고 결과는 마술적이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버렸다. 밤낮으로 실험을 이어갔던 장소에서. 경계가 흐려진다.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의심은 흘러 들어갔다. 다시 <해 달 차 속 모든 장면들로. 풀밭이 맞을까? 질문들이 부풀어간다. '아닐걸? 다시 생각해?’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들에게서. 형광을 머금은 연둣빛 끝선을 짚어본다. 혹시 지평선이 아닐까. 희미한 선들이 움직이며 다가온다. 며칠 전 스마트폰의 알람이 떠오른다. '19년 전 소중한 추억 감상’ 구글 포토가 보낸 메시지다. 손끝으로 밀어 올린다. 거칠게 깎인 절벽에 기댄 앳된 내가 있다. 확신했다. 자신 있게. 다음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때 그 장면을 알 수 있다고. 눈을 감아본다. 아스라이. 수평선이 눈에 감긴다. 파도와 세차게 부서진다. 절벽 도로의 밑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대학교 2학년을 마친 겨울 방학이었다. 중학교 친구가 유학 중인 호주로 갔다. 10시간을 날아가니 여름이었다. 분명 두꺼운 니트를 입고 비행기에 탔는데. 변덕스러웠다. 호주의 날씨는. 멜버른은 특히나 그러했다. 뜨거운 낮을 탐험했다. 온몸으로. 섬세하게 부서지는 해안선을 바라본다. 에메랄드색이 퍼져나가고 있다. 바다의 물결이 절벽에 자라난 식물들과 만났기에. "신비로워” 동시에 새어 나온 말이었다. 오랜 친구와 마주보며 웃었다. 맞다. 닮았다. 알아챘다. <해 달 차에 드리운 연둣빛과 초록을 가로지르는 그 묘한 색채들과.
알았다. 카지노 사이트이 그려내는 색의 마법을. 멀어졌던 기억을 불러온다. 생생하게. 이 회상은 오늘은 미화되었다가 다음날은 아프게 다가온다. <해 달 차 속 태양 아래의 녹음과 밤하늘의 먹구름처럼. 이는 현실일까, 비현실일까. 경험일까, 상상일까. 두 소녀에게 묻고 싶다. 조심스럽게. 태양과 달빛을 나누어 함께, 아니 각자 앉아 있는. "관심이 없다”라고 답하려나. 조금 쓸쓸해진다.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은 현대인 같아서.
"살아온 각각의 나라와 그 장소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카지노 사이트은 답한다. 그가 그려내는 상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장면들에 대해. 카지노 사이트은 유년 시절 미국과 일본에 머문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지내며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런던에서 작업한다. 다녀가는 삶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리움이 피어난다. 발견했다. <해 달 차의 풍경 속 좁게 내어진 물길 옆 예스런 주전자와 연적들을. 조선시대 책가도에 등장하는 기물들 같다. 과거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다. 예스러움에 취한 채로.
해와 달은 함께 있다. 서로를 비추면서. 기묘하기보다 자연스럽다. 어느새 카지노 사이트이 만들어 낸 시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초원 가운데에 앉아본다. 하늘을 향하는 사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을 날려 보내 달라고. 바라본다.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지기를.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카지노 사이트이 그려낸 세계처럼.
유토피아가 아닐지라도
인정한다. 있었던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재회를. 카지노 사이트이 초가집 속에 그려낸 바람처럼. 낮에 눈물짓더라도 밤에는 별 하나를 보고 꿈꿀 수 있다. 최민영이 만들어낸 햇살과 달빛이 공존하는 공간의 마법처럼. 다짐해본다. 현실의 유토피아를 바라지 않겠다고. 나의 '낙원’은 스스로 만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