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실 결혼이 너무 하고 싶어요. (비속어 주의) 그놈의 웨딩드레스가 너무 입고 싶어요. 사진 왕창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다 올리고 싶어요. 20장 꽉꽉 채워서 마지막 한 장까지 전부 다!"

사랑을 갈망하며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여자가 식탁 위로 벌떡 올라가 외친다. 울먹이는 여자 옆에는 오늘 처음 본 남자가 있다.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당신한테 해줄 게 없다"며 거리를 두는 남자. 둘은 이대로 서로를 지나칠까? 아니면 카지노 잭팟 키워나갈 수 있을까?
대니(배우 이종혁)와 로라(배우 유선)가 마주보며 와인을 마시는 모습./사진=허세민 기자
대니(배우 이종혁)와 로라(배우 유선)가 마주보며 와인을 마시는 모습./사진=허세민 기자
영국 런던 배경의 연극 '비기닝'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낯선 남녀가 하룻밤 사이에 주고받는 솔직하고 진득한 대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레면서도 묘하게 어색한 상황이 2인극으로 현실감 있게 전개된다. 비기닝이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경은 늦가을, 런던 크라우치엔드의 한 아파트. 능력 있는 사업가 로라가 사는 이곳에서 왁자지껄한 홈파티가 끝나고, 부엌에는 이날 지인의 친구로 초대된 남자 대니만 남았다. 로라는 이날 처음 만난 대니에게 "집에 안 가길 바랐다"며 솔직하게 호감을 드러다. 그런데 대니의 반응은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당황한 듯 몸을 뒤로 빼고, 갑자기 고무장갑을 끼더니 집주인도 아닌데 설거지를 시작한다. 대화 도중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면 집에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떠나지는 않는다. 로라는 그런 대니가 답답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진다.

로라는 서툴지만 매력적인 대니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하지만, 알고 보니 그에게는 카지노 잭팟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 대니가 로라에게 선을 긋는 것은 지난 상처가 불러온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대니에게 로라는 자신도 완벽하지 않고, 과거보다 중요한 건 지금이라며 위로한다. 그렇게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밀도 있는 대화가 지루할 틈 없이 흐른다. 둘의 대화에는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축구, 정치적 이슈 등도 언급되지만 이질감 없이 느껴진다. 결국, 영국이든 카지노 잭팟이든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민은 다르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 '비기닝' 포스터/사진=수컴퍼니
연극 '비기닝' 포스터/사진=수컴퍼니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은 두근거림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에는 두려움도 동반된다. '지금 이 사람과 만나도 되는 걸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등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비기닝은 이러한 망설임과 두려움을 넘어 카지노 잭팟 열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둘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극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지난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사로잡혀 주저하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비기닝은 2017년 영국 내셔널시어터 공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영국 유명 극작가 데이비드 엘드리지가 사랑과 관계를 주제로 만든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대니와 로라 역은 배우 이종혁과 유선, 윤현민과 김윤지가 각각 쌍을 이뤄 연기한다. 오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