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카지노, 워크맨 이후 30년동안 혁신 제품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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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왕국' 일본 신화의 몰락 (1) 창의성 잃어버린 온라인카지노일본 전자업체의 부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온라인카지노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 ‘3총사’의 신용등급은 모두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떨어졌다. 백색가전 시장의 강자였던 산요는 흡수 매각 등으로 아예 공중분해됐다. 반도체업계의 승부수였던 르네사스도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전자왕국’ 일본은 이제 옛말이다. 일본 전자업체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5회에 걸쳐 실패 원인을 분석한다.
도전적 창업세대 은퇴 후 정부보다 더 관료화
온라인카지노는 한때 혁신기업의 대명사였다. 내놓는 상품마다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다. 워크맨이 대표적이다. 음악은 실내에서만 듣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1980년대판 ‘아이폰’이었던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휴대용 흑백 TV, 플로피 디스크 등 그동안 세상에 없던 신제품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혁신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깜짝 놀랄 아이디어는 고사하고 TV 등 기존 시장에서조차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온라인카지노는 왜 평범한 기업이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을 정도다.◆창조적 에너지의 상실
기업혁신 연구로 유명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창조적 에너지의 상실’을 일본 전자업체의 참패 원인으로 꼽으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온라인카지노를 지목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1980년대까지 온라인카지노는 12가지의 파괴적인 혁신상품을 선보였지만 그 이후엔 놀랍게도 단 한 건의 제품도 혁신적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노트북 ‘VAIO’ 등 히트상품이 있긴 했지만 기존 제품의 개량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이 점차 적극성을 잃고 보수화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온라인카지노처럼 극단적으로 변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창업 세대의 은퇴를 꼽았다. 온라인카지노 창업주들이 하나둘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조직문화가 급속히 관료화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굿바이 온라인카지노’라는 책을 출간한 언론인 출신 작가 다테이시 야스노리(立石泰則)는 “하워드 스트링어 등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온라인카지노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창업자 가문의 입김을 줄이는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그룹을 25개 회사로 잘게 쪼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룹 본사는 투자은행처럼 관리와 평가 기능만 담당했다. 각 사업부문은 본사의 눈에 들기 위해 단기 성과를 내는 데만 집착했고, 이런 문화는 조직을 딱딱하게 관료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리스크 회피와 관료화
리스크를 짊어지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대박 가능성에 투자하기보다는 잘 팔리는 온라인카지노에만 목을 맸다. 시장을 선도하지 않고 적당히 망을 보다가 시장이 무르익으면 뛰어드는 ‘후발진입 전략’이 그룹에 만연했다. 영업과 마케팅 쪽에만 힘이 실리고 연구·개발 분야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형 전함을 앞세운 전략을 고수하다가 항공모함 등 신기술로 무장한 연합군에 대패한 것과 똑같은 과정을 온라인카지노가 밟아왔다”고 분석했다. TV 등 굵직한 기존 사업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옛 성공 방정식이 아이폰 등 새로운 우회상품의 폭발력을 간과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온라인카지노는 작년에 4000억엔이 넘는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올해 200억엔의 흑자 전환을 목표로 잡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투기등급으로 추락해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소지도 커졌다. 올림푸스 지분 인수를 통해 의료기기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동안의 부진을 한꺼번에 만회하기엔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온라인카지노의 앞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