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양상수의 질서, 돌과 공간, 음악이 만드는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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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개비온과 테라조
개비온과 카지노 양상수, 우리들의 집단기억
무엇이든 혼자일 때보다
무리 지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무리 짓는 것이 하나의 규칙을 가질 때
아름다움을 넘어 놀라움을 준다
격자형으로 엮은 철제망 속에 가공하지 않은 화강암을 적당히 담아 카지노 양상수 개비온(Gabion)은 실용적이면서도 특유의 멋을 갖춘 건축 소재입니다. 하천 가까이서 침식을 막아주고 산사태를 방지하는 축대(옹벽)로써 사용되니 건축보다는 오히려 토목 소재에 가깝죠. 가끔은 공원을 미로처럼 꾸미거나 벽으로 두를 때도 사용되고, 위에 널빤지를 얹으면 벤치가 되니 두루두루 활용도가 높은 소재입니다. 화강암 파편에 불과했던 돌무더기를 번듯한 벽과 기둥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개비온은 ‘무엇이든 혼자일 때보다 무리 지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교훈을 줍니다.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부어 바닥이나 벽을 만들거나 시멘트를 굳혀 구조를 갖출 때, 만약 소량의 화강암 덩어리나 유리 파편이 섞여 있다면 ‘불순물’이 됩니다. 하지만 그 섞임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라면 테라조로 거듭난다고 해야 할까요? 화강암이건 무엇이건 적절한 비율로 잘 섞으면 매력적인 건축 소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역시 불규칙하지만,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카지노 양상수이 만들어집니다.그래서 개비온과 테라조를 바라보면 마치 여느 생명체가 무리를 짓고 협력해 환경에 적응하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협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쉽게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무리 짓는 것이 하나의 규칙을 갖게 될 때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놀랍다’는 반응도 이끌어내게 됩니다. 집 앞의 떡갈나무, 회화나무, 상수리나무 등 온갖 나무의 잎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카지노 양상수(자기유사성 또는 자기복제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이 가장 가까운 사례입니다. 솔방울, 눈 결정 등 자연으로부터 오는 많은 형태에도 한결 같이 카지노 양상수이 적용됩니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두 건축가의 주특기인 비정형의 곡면으로 설계한 외관과 철저하게 계산된 패널로 조합한 카지노 양상수이야말로 파라메트릭 건축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죠.
사카모토 류이치가 1978년에 발표한 음반이자 동명의 곡인 ‘천개의 칼(싸우전드 나이브스, Thousands knives)’이 있습니다. 칼을 여러 개, 한 천 개 정도는 모아야 그 비장함이 잘 느껴졌기 때문에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까요? 모스 부호처럼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건반의 반복적인 리듬이 마음을 사로잡는 이 카지노 양상수은 왠지 모르게 토속적입니다.
음악이 전개될수록, 건반은 한바탕 신나게 걷거나 어깨를 들썩거리다가 ‘카지노 양상수’처럼 자기 복제와 반복을 이어갑니다. 만약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가 대신 디자이너의 길을 택했다면 틀림없이 반복적인 패턴을 강조한 설계를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카지노 양상수스러운’ 음악을 완성하는 작곡가들도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 Thousand Knives]
널리 알려진 현대카지노 양상수 작곡가 가운데 필립 글래스(Philip Morris Glass),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가 그렇습니다. 필립 글래스의 연습곡(Etude)을 듣고 있으면 연못에 생긴 동심원이나 양떼구름 같은 반복적인 모양이 생각납니다. ‘엑스피리언스(Experience)’ 등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주요 곡들을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지노 양상수을 듣는 동안 파라메트릭 건축물 내부를 산책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안톤 바타고프(Anton Batagov)가 연주하는 필립 글래스(Philip Morris Glass)의 'Etude']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 Experience]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리빙룸 송즈(Living room songs) 음반에도 파라메트릭 건축 같은 카지노 양상수 가득합니다.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을 처음 접했던 장소가 그 느낌을 더욱 깊게 새겨주었는데요. 폴 카도비우스(덴마크의 디자이너이자 시스템 선반의 상징적 브랜드)에 사진집을 진열해놓고 판매했던 그 서점에 섰을 때, 수직과 수평의 반복되는 이미지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과 겹치면서 강렬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올라퍼아르날즈(Ólafur Arnalds) - Living Room Songs]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은 개별기억의 합이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가 역사·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기억을 일컬어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 콜렉티브 메모리)’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이를 ‘시대정신’이나 ‘공감’, ‘사회적인 인식틀’이라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제자이자 저명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 ‘집단기억’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모리스 알박스는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또 다른 연구자인 제프리 올릭(Jeffrey K. Olick)은 <기억의 지도를 통해 ‘집단기억은 단지 개인의 기억을 모은 것을 넘어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돌무더기를 모아 둔 것은 더 이상 돌무더기가 아닌 개비온이고, 시멘트 반죽에 파편을 섞으면 이물질이 아니라 테라조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난히 슬픈 일로 가득한 을사년(乙巳年)의 겨울을 살아내는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떤 집단기억으로 기록하게 될까요? 짐짓 궁금해지는 새벽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