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나인은 서울 강남 지역에 있는 유일무이한 아트카지노 차무식관이다. 국내 아트카지노 차무식관 중 가장 높은 곳(12층)에 위치한 극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겨울을 제외하고 개방하는 아트나인의 테라스는 놓쳐서는 안 될 랜드마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트나인의 견고한 정체성이라면 독특하고도 시의적절한, 그러니까 모두가 원하지만 그간 볼 수 없었던 카지노 차무식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의 특별전과 각양각색의 기획전이다.
이 카지노 차무식들을 기다리는 동안 예쁘고 짜임새 있게 꾸며진 카페테리아에서 맛 좋은 와인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이토록 상찬할 것이 차고 넘치는 예술카지노 차무식관, 아트나인은 이번 극장 응원 프로젝트의 세 번째 주인공이다. 아트나인과 엣나인의 카지노 차무식 수입과 배급, 마케팅과 극장 업무 등을 총괄하는 주희 이사를 인터뷰 했다.
사실 아트나인의 시작은 ‘씨너스(단관 극장들의 연합체이자 메가박스의 전신)’라는 극장이었다. 정상진 현 아트나인 대표가 당시 씨너스 이채(현 메가박스 파주 아울렛점)와 씨너스 이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 대표는 카지노 차무식를 전공하고 카지노 차무식를 즐겨보는 카지노 차무식광이었는데, 한국 극장들의 스크린과 사운드의 수준,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오기도 전에 불을 켜버리는 관행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운드와 스크린의 퀄리티가 좋은 극장, 그리고 카지노 차무식를 만든 창작자와 관객 모두를 존중해주는 극장을 꿈꾸게 됐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극장 안에 그런 요소들을 갖춘 아트하우스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중 씨너스 이수가 현재의 아트나인이 되었다.
너무 복잡하고 긴 얘기인가? (웃음) 엣나잇필름은 씨너스 이수를 운영할 때 생겨난 것이다. 그때 사카모토 준지의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상영하고자 했는데 방법이 녹록지 않았다. 결국 이 작품을 위해 수입 배급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뤄진 일이다. 아트카지노 차무식관을 운영하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었기에 수입 배급사를 직접 만들어 상영할 카지노 차무식를 자족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트카지노 차무식 0관 / 사진출처. 아트카지노 차무식 페이스북▷ 주희 이사님이 아트카지노 차무식에 합류한 것은 언제쯤인가. 그전에는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계기로 아트·엣카지노 차무식에 합류하게 되었나.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2007년, 씨너스 이수에 합류했다. 원래는 평론 쪽을 전공했지만, 보는 카지노 차무식마다 다 좋아서 (웃음) 평론의 길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느꼈다. 차라리 카지노 차무식를 소개하는 일이 성향에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처음으로 기획했던 것이 ‘핑크 카지노 차무식제’이다. 일본의 핑크카지노 차무식를 여성 관객을 위해 상영하는 행사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이후 그런 업무를 이어오는 중 씨너스가 현재의 아트나인이 되고, 엣나인을 만들게 되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모든 일들을 책임지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오피스와 병원, 상가가 즐비한 곳에 예술카지노 차무식관을 생겨서 다들 놀라워했다. 그럼에도 예술카지노 차무식관에 있어 접근성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상업카지노 차무식관과는 다르게 예술카지노 차무식관을 오는 대부분의 관객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아트나인은 교통과 접근성에 있어 매우 이상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 개관 당시 참고했던 다른 예술 카지노 차무식관이 있었는지.
일본 시부야에 있는 ‘이미지 포럼’을 모델로 했다. 외관보다는 이미지 포럼의 라인업, 그리고 운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참고했다. 또 참고했던 곳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극장, 지금은 없어진 곳이지만 시부야의 ‘시네마 라이즈’라는 극장이다. 동굴처럼 생긴 극장인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도 그곳에서 봤고…참고를 많이 했던 곳이다.
카지노 차무식관 이미지 포럼 외관 / 사진제공. 주희 이사▷ 개관 초기에 사건, 사고는 없었는지.
당시 아트나인의 최고 약점이라면 천장이 낮다는 것이었다. 그 위치에 4K 영사시스템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 상영 후에 들어오는 관객이 있으면 스크린의 1/3의 가려진다. 초반에는 관객들이 늦게 들어오시면 오리걸음으로 들어가 달라고 매번 부탁을 드렸다 (웃음). 결국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2K로 사양을 낮추고 (어차피 4K 카지노 차무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사시설을 더 높게 올렸다. 지금은 오리걸음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웃음).
▷ 개관 당시 그러니까 10여년 전 방문한 관객들과 지금 관객들은 어떻게 다른가.
확실히 관람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카지노 차무식를 어디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귀한 고전을 틀었을 때, 그것에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이 아닌 이 카지노 차무식의 존재 자체도 몰랐을 것 같은 20대층이 관객석을 채운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스즈키 세이준의 <아지랑이좌(1981)를 상영했을 때가 그런 경우였다. 오랜만의 상영이기도 하지만 보기 힘든 카지노 차무식이고 스크린에서의 관람이 절대적인 작품이어서 그런지 젊은 관객층이 많았다. 그들에겐 이 카지노 차무식가 고전 명작이라기 보다는 신기한 카지노 차무식, 한 번쯤 체험해 볼 만한 카지노 차무식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 카지노 차무식에만 거의 2000~3000명이 몰렸다.
프로그램에 차별성을 두려고 한다. 현재 예술카지노 차무식관들이 대부분 비슷한 카지노 차무식들을 동시에 틀고 있지 않나. 우리만의 독보전인 기획전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수입 배급사를 겸하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직접 해외 배급사와 소통해 <아이다호 <헤드윅 같은,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카지노 차무식들도 틀었고, 특별한 테마를 만들어 다른 예술카지노 차무식관에서 하지 않았던 컨셉의 카지노 차무식들도 상영한다.
또 하나의 차별점은 (관객분들에 의하면) 잇카지노 차무식(eatnine)이 아닐까. 방대한 메뉴와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는 맛? (웃음). 원래는 이탈리안 셰프가 있었는데 현재의 형태로 캐쥬얼 카페테리아, 그러니까 극장에 걸맞은 메뉴와 스타일로 바껐다. 이 부분에서는 ‘업링크’라는 시부야의 극장을 참고했다. 업링크는 극장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그런 편안한 느낌으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는 극장이다.
아트카지노 차무식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Cafe & Bar & Restaurant '잇카지노 차무식(eatnine)'. / 사진출처. [위] 잇카지노 차무식(@eatnine9) 인스타그램, [아래] 사진=필자 제공
잇카지노 차무식 카페테리아 / 사진=필자 제공▷ 아트나인은 국내 예술카지노 차무식관 중에 기획전이나 특별전, 회고전 등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극장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과 앞으로 예정된 기획전을 공유한다면.
몇 년 전에 우리가 너무 같은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자성을 해 본 시간이 있었다. 조금 더 신선하고,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공부하고 전공한 것들을 더 능동적으로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ATG 기획전(3월 15일~23일)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 작가주의·전공투 카지노 차무식들의 극단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열리는 프랑스 카지노 차무식주간(4월 4일~13일)과 클래식 나인 역시 기대하셔도 좋다.
▷ 이번 인터뷰 릴레이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카지노 차무식, 독립카지노 차무식가 혹한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 예술 카지노 차무식관으로서 공생, 상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독립카지노 차무식가 특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지원금도 줄었지만, 모객이 점점 힘들어진다. <사랑의 고고학 (2023), <힘을 낼 시간 (2024) 같은 수려한 독립카지노 차무식들을 배급하고 상영했는데 예상보다 잘 안됐다. 물론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다. 그럼에도 예측했던 결과에서 너무 벗어나다 보니 낙심하기도 했던 것 같다. 독립카지노 차무식는 한국카지노 차무식의 심장 같은 것이고 극장은 그것을 잘 품어주고 성장할 수 있게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케일의 크고 작음, 어려움과 덜 어려움의 문제지, 극장과 독립카지노 차무식는 존속할 것이다.
아트카지노 차무식 주희 이사▷ 마지막으로 극장을 하길 잘했나.
일본에 있었을 때 정말로 극장을 사랑했다. 특히 작고 개성이 강한 그런 극장들 말이다. 언젠가 극장을 갖게 되면 내가 호스트 같은 느낌으로 관객들을 맞아야지, 그런 꿈을 늘 꿔왔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하는 일에 감사하다.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