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학자 에릭 존 홉스봄(82)은 저서 "의적의 사회사"(원제 Bandits)
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적이란 지배계급이 농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농업사회에서 나타나며 보통 10~12명으로 이뤄지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특수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농민사회에서 탈출하려는 자기구제의 한
형태라는 설명이다.

14세기후반 랭글랜드의 장편시 "농부 피어스의 환상"에 처음 나타난 뒤
소설과 영화 만화의 주인공으로 맹활약중인 로빈 후드는 물론 조선시대
의적으로 사랑받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도 홉스봄의 이런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내의 젊은 역사연구자 이덕일 이희근씨 또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서
사서엔 모두 단순한 도적두목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의적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생활파탄에 이른 백성들의 각색탓이라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적의 인기가 식지 않거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판 의적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은 부자및 권력자에 대한 응징이 서민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효과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영화 "밴디트 퀸"의 모델인 인도의 폴란 데비는 갱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30대 절도범이 현직 장관과 도지사, 경찰서장 집에 들어가 달러와 현금 등
거액을 훔쳤다고 주장해 전국을 들끓게 만들고 있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잃어버린게 별로 없다고 강조하고 도둑은 훔쳤다고
우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식대로라면 피해자의 말을 믿는 게 도리요 순리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과거 조세형사건까지 들먹이며 도둑의 말에 비중을
두는 눈치다.

어디서 누구것을 훔쳤는가에 관계없이 도둑은 도둑이다.

그럼에도 잃은 사람보다 도둑이나 강도짓을 한 인물들에게 동정과 이해의
눈길을 보내는 건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어둡고도 슬픈 단면이다.

유명인사들에 대한 의혹과 불신, 도둑맞은 물품을 정당한 재산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피해자를 안됐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한낱 절도행위가 정치논쟁의 주요이슈로 발전하고 도둑을 도둑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사회는 불행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보다 도둑의 말을 더 믿는 지경까지 왔는지
기가 막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