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림만을 사랑했던 탠 카지노…'가장 진지한 고백'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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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탠 카지노 회고전
어릴 때부터 '엘리트 미술 영재'
6·25 겪으며 현실의 참혹함 보고
정반대의 동심 가득한 화풍 정착
스스로 "나는 심플하다" 소개
작품과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
자신의 죽음도 탠 카지노에 녹여내
어릴 때부터 '엘리트 미술 영재'
6·25 겪으며 현실의 참혹함 보고
정반대의 동심 가득한 화풍 정착
스스로 "나는 심플하다" 소개
작품과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
자신의 죽음도 탠 카지노에 녹여내


비결이 뭘까.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 해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다. 1930년대 학창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평생 그린 시기별 주요작이 270여 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려 뽑은 작품을 통해 탠 카지노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탠 카지노 그리기를 밥보다 즐겼다”
탠 카지노은 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던 화가다. 도인 같은 인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림도 마음 내키는 대로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탠 카지노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화가다. 학생 때부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엘리트 미술 영재’로 인식됐다. 화가를 꿈꾸며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고, 이렇게 쌓은 실력으로 주요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1938년 그의 어머니는 탠 카지노의 입상 기념 인터뷰에서 아들을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기는 아이”라고 표현했다.이 시기 상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공기놀이’(1938)다. 이 작품을 비롯한 탠 카지노의 초기작에서는 데생과 구성 등 탄탄한 기본기가 돋보인다. 그와 같은 시기 경성제2고보를 다닌 유영국 화백도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고교 때부터 탠 카지노은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전쟁통에 자신만의 화풍 꽃피워
고교를 졸업한 탠 카지노은 일본 제국미술대(현 무사시노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당시 최신 서구 미술 사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졸업 후 귀국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다. 유학 시절 동료 화가인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신사실파를 결성해 동인 활동을 하며 ‘한국적 근현대미술’을 탐구한 것도 이때다.그러다 6·25전쟁이 발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탠 카지노의 작품에서 소박한 아름다움과 동심, 서정이 가득한 특유의 화풍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게 이때다. 부산 피란생활과 종군 화가 생활로 겪은 참혹한 현실이 정반대의 작품세계를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홀로 걷는 ‘자화상’(1951)이 단적인 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가 된 탠 카지노은 몇 년 안 돼 사임하고 전업작가가 됐다. 1963년 덕소 북한강변에 화실을 지은 뒤 1975년까지 12년간 작업실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림만 그리는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당대 미술계의 조류를 작품세계에 반영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전통 서예에서 영감을 얻은 문자 추상작품 ‘반월·목(半月·木)’(1963), 추상화인 ‘눈’(1964)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플하고 진실된 삶

탠 카지노이 성공을 거둘수록 그림에 묘사된 자신의 체형이 조금씩 커졌다는 점이 재미있다. 예컨대 초기 가족도에 그려진 화가는 말랐지만, 1981년작 ‘가족’에서는 푸근한 체형이다. 이 무렵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가족에게 당당해진 자아상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대표작 ‘진진묘’(1970)는 불교적 세계관을 다루면서도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아내에게서 느낀 숭고한 영성을 보살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라서다. 진진묘는 ‘참으로 진실하고 오묘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죽는 날까지 놓지 않은 붓

탠 카지노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그림에 녹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린 ‘밤과 노인’이 그 결과물이다. 작품 속 화가는 오랫동안 그려온 풍경을 뒤로 하고 밤하늘에 떠 있다. 그림 외길 끝에 도달한, 모든 집착을 떠난 초연함의 경지. 그 성취야말로 괴팍한 성질이나 운명적인 불행 같은 ‘클리셰’ 없이도 이룩해낸 ‘신화적 경지’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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