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84년 촬영한 미국의 판화가 엘즈워스 켈리(1923~2015). 사진 오른쪽 하단 거울에 카메라를 든 펠센의 모습이 보인다. /GRI 제공
시드니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84년 촬영한 미국의 판화가 엘즈워스 켈리(1923~2015). 사진 오른쪽 하단 거울에 카메라를 든 펠센의 모습이 보인다. /GRI 제공
빌렘 드 쿠닝, 데이비드 호크니, 세실리 브라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뒤에는 늘 그가 있었다. 때로는 작가들을 든든하게 지원하는 대부(代父)로, 때로는 ‘아지트’를 내어주는 격의 없는 친구로. 최근 타계한 미국의 전설적인 갤러리스트 시드니 꽁 머니 카지노 3 만(1924~2024)의 이야기다.

60년 전통의 판화 공방 ‘제미나이 GEL’을 공동 창립한 꽁 머니 카지노 3 만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제미나이 GEL(Graphic Editions Limited)은 1966년 설립 이후 미국 서부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갤러리다. 시작은 LA 멜로즈 애비뉴의 허름한 공방이었다. 1975~1979년 캐나다의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의 손을 거쳐 지금의 새하얀 갤러리 건물로 재탄생했다.
1970년대 '프렌즈'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옆모습. 시드니 펠센이 촬영했다. /GRI 제공
1970년대 '프렌즈'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옆모습. 시드니 꽁 머니 카지노 3 만 촬영했다. /GRI 제공
꽁 머니 카지노 3 만 처음부터 예술과 가까운 삶을 살았던 건 아니다. 그의 부모는 미국 시카고에서 청과점을 운영했다. 10대 때 온 가족이 LA로 이주한 이유도 싱싱한 농산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군에 입대해 유럽에 주둔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들어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선 회계학을 전공했다.

타고난 멋쟁이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 챙이 넓은 페도라와 뿔테 안경을 즐겨 쓰던 영락없는 LA 신사의 모습이었다. 낮에는 회계사로 근무하고 밤에는 취미로 그림과 도자기 수업을 듣는 생활이 이어졌다.

전업 갤러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40대 초반부터다. 판화 장인 케네스 타일러의 작업실을 우연히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원화의 ‘복제품’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던 판화의 독창적인 기법에 매료됐다.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대학 동창 스탠리 그린스타인을 불러 타일러의 공방을 갤러리로 꾸며나가기 시작했다. 제미나이 GEL이 탄생한 순간이다.

갤러리 설립 초기까지만 해도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판화의 성공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돌이켜보면 순진하고 무모했다”며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컬렉션을 쌓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란 막연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회상했다.
리처드 세라(1938~2024)가 제미나이 스튜디오에서 ‘라운드’ 연작을 작업하는 모습.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98년 촬영했다. /GRI 제공
리처드 세라(1938~2024)가 제미나이 스튜디오에서 ‘라운드’ 연작을 작업하는 모습.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98년 촬영했다. /GRI 제공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혁신에 대해 열린 태도였다. 그래픽아티스트 로버트 라우센버그,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갤러리로 모여들었다. 이뿐 아니다. 작가와 인쇄 장인이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며 원작자의 예술혼이 깃든 ‘한정판 판화’ 제작 방식을 정립했다.

밤새도록 전시 오프닝 행사를 비롯한 사교모임을 연 것도 이전까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꽁 머니 카지노 3 만 구축한 예술가 커뮤니티는 느슨하게 퍼져있던 1960~1970년대 LA 미술계를 결집하는 데 한몫했다.
‘로맨스’ 연작을 작업 중인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의 손을 확대한 사진.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77년 촬영했다. /GRI 제공
‘로맨스’ 연작을 작업 중인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의 손을 확대한 사진. 꽁 머니 카지노 3 만 1977년 촬영했다. /GRI 제공
아마추어 사진작가로도 활동한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아티스트들의 흔적을 따라다녔다. 1970년대 ‘프렌즈’ 전시 준비를 앞두고 분주한 호크니의 옆모습, 잉크가 잔뜩 묻은 라우센버그의 손잔등 등 미술사적 기록들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2003년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이러한 사진들을 모아 <아티스트 관찰기(The Artist Observed를 펴냈다.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 매일 갤러리에 출근해 사업에 관여했다. 100번째 생일을 목전에 둔 나이에 쓰러졌다. 만성 신부전이었다.
현대 추상주의 거장 줄리 메레투가 에칭 작업을 하는 모습. 2010년 꽁 머니 카지노 3 만 촬영했다. © Sidney B. Felsen /GRI 제공
현대 추상주의 거장 줄리 메레투가 에칭 작업을 하는 모습. 2010년 꽁 머니 카지노 3 만 촬영했다. © Sidney B. Felsen /GRI 제공
미국 LA 게티연구소(GRI)는 지난 2월부터 ‘가장 먼저 우정이 있었다: 시드니 꽁 머니 카지노 3 만과 제미나이 GEL 아티스트’ 특별전을 열고 있다. 라우센버그(1924~2008)부터 줄리 메레투(1970~)에 이르는 반세기 넘는 꽁 머니 카지노 3 만과 아티스트의 우정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전시장을 찾은 줄리 메레투는 “내가 제미나이 GEL에서 배운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판화를 통해 무엇이 가능한가’였다”며 “그보다 더 깊은 건 꽁 머니 카지노 3 만 가르쳐준 삶의 방식, 즉 사랑하는 방법, 인생을 즐기는 방법, 열심히 일하는 방법, 그리고 그 모든 삶을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라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